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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문화읽기] ‘입’보다는 ‘귀’를 열어야 2012-02-13


주병진‘주병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기대감을 높인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1990년대에 등장한 확실히 새로운 개념의 진행자였다. 이전까지의 쇼 진행자가 한껏 예의를 차리고 입에 발린 칭찬과 표면적인 정보만 주고받았던 것에 비하면, 주병진은 장난끼 있고 짓궂게 상대방에 대한 농담을 던지면서도 일정한 품위의 선을 지키는 독특한 새로움을 갖고 있었다.

최근 ‘토크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주병진이 다시 등장했을 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며 분주해지고 적나라해진 요즘의 토크 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다수의 패널들이 정신없이 토크를 쏟아내고, 강도 높은 폭로가 난무하는 요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신사적’인 단독 토크쇼가 어쩐지 밍밍해 보일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박찬호, 차승원 등을 데려다가 여자 아나운서 보조 진행자와 함께 한 처음 몇 회는 우려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등장한 것이 보다 발랄한 보조 진행자 사유리,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붉은 소파’같은 것들이다. 거기에 게스트들은 연예인을 벗어나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3명의 여성 커리어 우먼, K-POP한류 돌풍의 주역들로 다양하게 바뀌었다. 시청자들을 초청함으로써 토크쇼의 눈높이를 낮춤과 동시에, 게스트들은 초청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눈길을 끌 수 있는 사람으로 이분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 뒤에도 이 토크쇼는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여전히 변죽만 울리는 느낌이다. 그건 시대가 바뀌어서도, 보조 진행자의 유머가 부족해서도, 게스트가 화려하지 않아서도 아닌 듯하다. 모호한 표현일 수 있으나 주병진이라는 진행자와 이 토크쇼의 대본은 어쩐지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진지하게 듣고 싶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무릎팍도사’나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경우 진행자들이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집중력 있게 듣고 있고, (특히 무릎팍도사의 경우 성공의 핵심적인 요인은 제대로 던지는 질문을 통해) 다른 토크쇼에서는 듣고 보기 힘든 게스트들의 마음 깊은 곳 한 구석이나 허술한 구석을 반드시 건드려 준다는 점이다.

주병진 쇼의 빈 구석은 바로 그 지점이다. 성공한 여자들을 주르륵 모아놓고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한마디씩 물어본다면 ‘든든한 가정’과 ‘끊이지 않는 열정’같은 뻔한 대답밖에 나올 수 없다. 한류 아이돌들에게 “악플 때문에 힘들지 않냐?”, “여행 가방에 무엇을 가지고 다니느냐”같은 단편적인 질문으로 어떤 차별적인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아쉬운 점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주병진은 게스트들의 대답을 들을 때 그 대답보다는 ‘이 대답에 어떻게 반응해야 재치있을까’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무언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토크쇼의 분위기를 편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특별한 재치가 없어도 “아 그렇군요”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느낌을 주는 진행자도 있다. 주병진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토크쇼의 포맷이나 화려한 게스트, 유별난 보조 진행자 같은 형식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토크쇼의 핵심은 ‘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 그러기 위해선 진행자의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 보다는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귀’를 돋보이게 만드는 게 숙제 같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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