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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변할 수 없는 것들2010-07-19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외자 이름은 안 된다,
우리가 전주 이씨잖니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족보에 안 넣으려거든…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 여러 날 동안 옥편을 들춰보며 아내와 함께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껜 죄송하지만, 아이 이름만은 꼭 우리 부부 손으로 지어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부르기도 쉽고, 쓰기도 편하게 외자 이름을 지어줄 작정이었다. '율'이나 '우' 둘 중에 하나로 하자. 아내와 나는 그렇게 합의를 하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넣었다.
한데, 아버지에게 뜻밖의 말을 들어야 했다. 외자 이름은 안 된다, 우리가 전주 이씨잖니. 아버지의 설명인즉슨, 전주 이씨들은 대군(大君)이나, 군(君)처럼, 왕의 직계 혈족에게만 외자 이름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네 아들, 족보에 안 넣으려거든 마음대로 해라. 아버지는 완강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다시 옥편을 들춰, 남은 한 자를 찾아 넣을 수밖에.
그러면서 몇 년 전 만났던 한 여자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왕씨 성을 가진 여자였는데, 그녀는 내 본을 묻더니, 대뜸 이런 말부터 했다. 저하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결혼할 수 없는 분이네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 운운, 하는 여자가 좀 당황스러웠지만(이런 경우를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감의 충만이라고 해야 할까?),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원수의 집안하고 어떻게 혼인을 해요. 왕씨들은 원래 전주 이씨하곤 결혼 안 해요. 그녀는 그러면서 조선 개국 초, 강화나루와 거제도에서 있었던 왕씨 집단 수장(水葬) 사건에 대해서 장황하게, 급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주었다. 전(全)씨나, 옥(玉)씨도 전주 이씨하고 혼인하는 것을 꺼려할 거예요, 라는 말도 덧붙였다. 만난 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치 내가 태조 이성계라도 되는 양, 사납게 몰아붙였다. 이건 뭐, 연애를 하자는 건지, 역사의 심판을 받으라는 건지. 나는 그녀를 만나는 두어 달 남짓, 계속 그 얘기에 시달려야만 했다.(그녀는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갑자기 울면서 이별을 통보해왔다. 사랑하지만 떠난다는 식상한 이유를 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기나긴 역사 강의가 끝난 느낌이었다)
한 시인은 어느 지면을 통해, 요 근래 우리의 모든 가치가 온통 '미래'에게로만 쏠려 있다고 한탄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률이나 국민소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뉴타운은 아예 어휘 자체가 미래적이다), 모두 도처에 미래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란다.(몇 년 만 더 고생하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그런 말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라왔다) 나는 그 말에 동감한다.
우리 주변의 어떤 것들은 육백 년이 지나도 아직 변치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이성이나 합리성으론 도저히 설명이 불가하고, 논리적으로 잡히지도 않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때론 복수를 하기도 하고, 또 때론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더불어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질문하기도 한다. 우리는 현재,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있는가, 혹은 복수의 칼날을 갈게 하고 있는가. 답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생각은 안하고 곧장 미래로, 미래로만 달려가서 그렇지…. 주위를 돌아보며,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변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먼저 헤아릴 때이다. 그것들의 경계를 살피지 않고 몽땅 하나의 가두리에 가둘 때, 과거는 다시 우리를 역습해올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